폰테크 무직자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이 나라엔 왕이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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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중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6-25 04:23본문
민주주의의 표본인 미국에서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구호를 거리의 시위대가 외친다고 한다.
우리 대한국민은 전근대적인 왕정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나라 이름을 받들고, ‘민주공화제’임을 합의해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로 역사의 물줄기를 틀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역사는 일통하게 이어지고, 14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다.
그랬던 우리나라에서 20대 대선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쓴 이가 뽑히더니, 실제로 그는 킹처럼 행동하더니,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제 발등만 찧고 말았다. 이에 ‘킹받을 대로 킹받은’ 주권자들이 일어나 내란을 조기에 진압한 뒤 선거로 깔끔하게 응징했다. 그젠 생뚱맞게 ‘국모’란 단어가 튀어나와 실소를 자아냈지만 이젠 법의 심판만이 착착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보라, 세계도 놀라는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
한자는 세상을 복사하듯 그대로 사생(寫生)하는 문자다. 단순에서 복잡한 획으로 사물과 사태, 개념과 추상을 요약해 표현한다. 옥편은 이런 방대한 한자를 부수(部首)로 분류하는데, 한 일(一)부터 시작해서 ‘위아래로 통할 곤(丨)’으로 이어진다. 그다음은 ‘점 주(丶)’인데 이 부수에 속한 세 한자가 매우 매섭다. 붉을 단(丹), 알 환(丸), 주인 주(主). 이들은 계엄, 탄핵, 파면, 선거의 배후를 관통하듯 그대로 주르륵 엮어지지 않겠는가.
주권자들은 한 조각 붉은 마음, 이른바 단심(丹心)을 지녔다. 어처구니없는 계엄이 발동됐을 때, 총알같이 뛰어나가 저지한 이도 바로 이런 마음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탄환(彈丸) 같은 한 표를 통해 우리 공화국의 주인(主人)이 바로 자신들임을 확인하였다. 특히 왕(王)자 위에 무심한 점 하나 툭, 앉아 있는 주(主)를 오래 바라본다. 민주주의(民主主義) 만세. 우리나라 만만세.
일본 정부가 22일 한·일의 대륙붕 ‘제7광구’ 공동개발과 관련한 협정을 즉각 종료하지는 않기로 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일 간 우호적인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 중 어느 한쪽은 이날부터 ‘양국에 인접한 대륙붕 남부구역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JDZ 협정)의 종료를 통보할 수 있다. 그간 일본은 한국과 달리 협정의 종료를 바라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복수의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JDZ 협정의 종료 통보 여부를 두고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충분히 확인하면서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이 협정 존속을 요구하는 상황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요한 점,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점 등을 고려해 즉각적인 종료 통보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일은 석유 등 천연자원이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는 대륙붕 제7광구(8만2557㎢)를 공동개발하기 위해 1974년 1월30일 JDZ 협정을 체결했고, 협정은 1978년 6월22일 발효됐다. 제7광구는 한·일이 주장하는 대륙붕이 중첩되는 곳이다. 협정은 기본적으로 50년(2028년 6월)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50년 만료 때나 그 이후에 협정을 종료하길 바라면, 3년 전에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이날부터 종료 통보가 가능한 것이다.
한·일은 지난해 9월 일본 도쿄에서 공동개발 논의를 위한 실무급 공동위원회를 39년 만에 개최했지만 구체적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협정이 종료되더라도 일본이 한국과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제7광구를 개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7광구는 ‘경계 미획정 수역’이 되면서 한·일이 경계 확정 절차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엔해양법협약과 판례에 따라 경계 미획정 수역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석유 시추 등은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
협정이 종료되면 한·일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한국과 관계 유지를 위해 협정을 쉽게 종료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협정이 종료되면 중국이 제7광구 개발에 손을 뻗는 등 동중국해에서의 영향력 확대 행보를 강화할 수도 있다. 중국도 제7광구의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이 중국 견제 차원에서도 JDZ 협정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100살 엄마의 머릿속엔 100년의 기억이 뒤엉켜 있다 어느 순간 아무 기억이나 불쑥 솟구치는 모양이다. 어느 날 아침, 뜬금없이 물었다. “아이, 규갑이는 살았다냐 죽었다냐?”
규갑이가 누군지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게 누구냐고 되물었다.
“규석이 동생이제.”
그제야 기억이 났다. 엄마가 규갑이라 부르는, 전남편의 먼 피붙이를 나는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냥 중학 시절의 집 주인아저씨다.
그 집에서의 기억이 모든 집을 통틀어 가장 비참했다. 그래서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주인집과 벽에 지붕을 얹어 간이로 지은 그 집엔 창문도, 화장실도 없었다. 방문을 열면 견고한 벽이 아니라 반투명 비닐로 겨우 바람만 가린 부엌이었다. 그 무렵 나는 장염을 앓았고, 주인집의 현관문은 밤 9시면 잠겼다. 시도 때도 없이 배가 아팠던 나는 별수 없이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급한 불을 꺼야 했다. 부엌에서 뒷일을 처리해야 하는 서글픔보다 더 서글펐던 건 반투명 비닐 밖으로 어른거리는 주인집 아들 방의 불빛이었다. 하필 그 아이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그 시간에 담벼락 전망뿐인 창문을 열 리는 만무했지만 나는 그 아이 앞에서 늘 벌거벗은 느낌이었다. 가느다란 기억의 끈을 오랜만에 부여잡은 엄마가 덧붙였다.
“규갑이가 우리헌테 참말로 잘했다. 우리가 하도 쫓게낭게 즈그 집으로 오라드라. 덕분에 거개서 오래 살았제.”
나는 까맣게 모르는 이야기였다. 걸핏하면 형사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통에 서울로 이사 간 뒤 한집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규갑이 아저씨 집에서만 3년 가까이 살았다. 그게 아저씨의 배려였던 모양이다. 빨갱이를 자기 집에 들이는 게 어찌 쉬웠으랴.
아저씨 집에는 시조카들이 수시로 얹혀살았다. 그 집에는 수세식 변기가 있는 욕실이 있었지만 시조카들은 나처럼 야외 수도를 썼다. 아침에는 밥 지으려는 엄마와 나와 시조카 두엇까지 늘 북적거렸다. 야외 수도를 쓰는 동지여서일까, 시조카들은 나를 예뻐했다. 어린 나이에 출근해야 하는 처지이니 더 급했을 테지만 기꺼이 나를 위해 양보해주었다. 다이얼 비누를 처음 써본 것도 그 언니·오빠들 덕분이었다. 다이얼 비누로 세수를 하면 얼굴에서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났다. 신문물의 감각이라고나 할까?
밤 9시 전, 주인집 화장실에 가면 야외 수돗가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기가 났다. 남의 변기에 앉은 채 나는 매의 눈으로 비품을 살폈다. 우리 집 수건보다 두 배는 두툼한 듯한 송월타월, 써본 적 없는 아카시아 샴푸,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나는 가닿을 수 없는 세상의 증표였다. 그런 증표를 나는, 시조카들은, 쓸 수 없었다. 일부러 못 쓰게 한 것도 아닐 텐데 나는 괜스레 아주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시조카들이 한겨울에도 욕실을 놔두고 수돗가에서 씻는 것 역시 아주머니가 눈치를 주었기 때문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머리 굵은 중학생이랍시고 저런 게 소시민성이려니, 내심 비웃은 적도 있다.
엄마가 규갑이 아저씨 얘기를 꺼낸 날 마침 아저씨 형의 딸, 그러니까 나와 수돗가 동지였던 언니가 찾아왔다. 이만저만 해서 아주머니를 원망했었노라 털어놨더니 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가, 짝은어매 참말 좋은 사람이어야. 니도 생각해봐라. 울 아배가 빨갱이로 찍힌 사램인디, 고것만 해도 딱 짤라불고 싶었을 것인디, 우리들 다 받아줬어야. 짝은어매, 몸도 약허디 약허다. 그 몸에 자기 자석 너이에 우리꺼정 월매나 고됐을 것이냐. 긍게 노상 울쌍이긴 했어도 우리헌티 모진 말 한 번 안 했어야. 우리가 알아서 눈치 보고 그런 것이제. 나넌 서이는 고사허고 한나도 안 받는다. 시조카가 뭐라고 내 집서 묵에살릴 것이냐!”
언니 말이 옳다. 내 자식 하나 키우기도 힘들다고 죽는소리 해대는 요즘이다. 자식 넷에 시조카 셋, 멀고 먼 빨갱이 친척인 우리까지, 생각해보면 아주머니가 진짜 부처다. 내 상처만 쓰라려서 지금껏 아주머니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막둥이가 나보다 예닐곱 살 아래였으니 이제 아주머니도 90을 바라보는 할매가 되었겠다. 묵은 원망이 마음을 막아 여태 연락할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다. 이제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주어진 삶이 몸에 부쳐 노상 찌푸리고 있던(어린 나는 우리에 대한 거부로 읽었던) 아주머니가 처음으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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